[美, 이란 타격] 월가 "호르무즈 모멘트"...유가 쇼크 어디까지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의 이란 핵시설 직접 타격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원유 선물은 이미 10% 넘는 주간 상승세를 기록했다.
트레이더들은 미국의 직접 개입 이후 주요 산유국이자 수출국인 이란이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란 국영매체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전 세계 원유 유통의 약 20%를 차지하는 이 핵심 해상 통로의 최종 봉쇄 결정권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있다.
월가가 한때 낮은 확률로 여겼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임박한 리스크로 급부상하자 유가는 1월 초 이후 최고치로 올랐다.
23일 오전 7시 54분 현재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9월 인도분은 전장 대비 1.80달러(2.38%) 상승한 배럴당 77.28달러에 거래 중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0.69%(0.92%) 오른 75.62달러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은 이날 개장하자마자 3.20달러 급등, 80.28달러로 치솟았다가 상승폭이 축소됐다. WTI 선물도 일시 2.89% 달러 상승한 76.73달러로 뛰었다.
![]() |
지난 2019년, 이란 병사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순찰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화사 뉴스핌 특약] |
◆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나리오
이란은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중동 전역의 미국 목표물을 타격하고 원유 유통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 이런 조치가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을 초래할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충격의 정도와 기간을 두고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로이터통신의 수석 석유 및 가스 기업 전문기자 론 부소는 이란이 페르시아만 해상 교통을 방해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시도든 미국 해군의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공급 충격의 장기화 가능성을 제한할 것으로 봤다.
또 역사적으로 중동 등 주요 산유지에서 심각한 분쟁이 발생하거나 원유 공급 차질이 있을 때마다 원유 가격은 단기간에 급등했지만, 여유 생산 능력과 수요 억제, 그리고 신속한 군사·외교적 대응 등으로 인해 가격은 빠르게 안정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란 게 부소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바레인에 주둔한 미국 제5함대 등 지역 내 미군 해군 전력이 집결된 만큼 이란이 해협을 표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대리 세력(프록시)에 대한 공격으로 이란 자체 군사력이 약화됐는지도 의문이다.
유라시아 그룹의 이란 및 에너지 수석 애널리스트 그레고리 브류는 보고서에서 "미국은 걸프와 주변 지역에 막대한 군사력을 집결시켰으며, 이란이 해협에 대응할 경우 반드시 중대한 군사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류는 이란이 자국 에너지 수출 시설이 온전한 동안 에너지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향후 며칠간 이란이 유조선 통행을 더욱 방해할 가능성은 높다고 경고했다.
JD밴스 미국 부통령 역시 22일 TV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 방해 시도는 이란에게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스케방크 애널리스트 쿠시스토는 해협 봉쇄 시도는 이란이 최후의 수단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협은 이란의 어려워진 경제에 매우 중요하며, 이란 원유 수출의 거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향하는데, 해협을 봉쇄하면 중국을 자극해 이란 내 경제적 어려움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 최악의 경우 유가 130달러
월가에서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130달러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이후 JP모건 애널리스트들은 "극단적 결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원유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리포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디 리포 회장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경우, 원유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원유가 이 범위까지 오를 경우,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갤런당 최대 1.25달러 오를 수 있다고 분석가들은 내다봤다.
리포 회장은 "소비자들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약 4.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이며, 캘리포니아에서는 6달러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보복으로 인한 원유 공급 차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관건이다.
CIBC 프라이빗 웰스의 시니어 에너지 트레이더 레베카 바빈은 "인프라가 타격을 받더라도 신속히 복구된다면 원유는 상승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란이 보복으로 장기적 피해를 입히거나 장기적 공급 위험을 초래한다면,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상승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JP모간 전문가들은 1990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 전쟁, 2018년 이란 제재 등 주요 산유국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건들은 모두 원유 시장에 의미 있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 같은 사건들에서 원유가격은 공정가치 대비 배럴당 7~14달러 프리미엄을 장기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또 "산유국 내 정권 교체(지도자 교체, 쿠데타, 혁명, 주요 정치적 변화 등)도 역사적으로 가장 크고 오래가는 가격 변동을 가져왔다"면서 "수요 상황과 OPEC의 여유 생산능력이 시장 전체 반응을 좌우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원유가격이 평균적으로 76% 오르는 등 큰 변동을 유발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