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EU 내 세 번째로 많은 국가부채로 군사력 강화 전략 발목 잡혀… "마크롱, 곤경에 빠졌다"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프랑스가 독일 등 다른 유럽 지역 국가들과 함께 대대적인 국방개혁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엄청나게 많은 국가부채 때문에 이러한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의 국가부채는 작년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달해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연합(EU) 국가 중 세 번째로 많다. 또 재정적자는 GDP 대비 5.8%로 EU의 재정준칙이 정하고 있는 상한선 3%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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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군사비 지출을 현 GDP 대비 약 2%에서 3~3.5%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군사비 지출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나 오는 2030년에는 1000억 유로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FT는 보도했다.
프랑스 정치권과 재정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마크롱의 구상이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심각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강력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세금을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3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에게 재정적자 감축 약속을 지키면서 군사 지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바이루 총리는 이런 마크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FT는 "이러한 상황은 냉전 이후 수십 년간의 군 예산 삭감 이후 군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마크롱을 곤경에 빠뜨렸다"고 진단했다.
EU가 추진하고 있는 '유럽 재무장 전략'도 프랑스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EU는 일시적으로 군사비에 한해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회원국은 GDP의 최대 1.5%까지 군사비를 늘릴 수 있게 됐다. 4월 말 현재 독일과 폴란드를 포함한 16개국이 이른바 국가적 유예 조항을 신청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현재로선 그럴 의향이 없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U의 정책은 해당 국가로 하여금 국가부채를 더 늘릴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인데, 이는 이미 엄청난 빚을 갖고 있고 이자를 갚는 것도 힘겨운 프랑스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프랑스 정부는 정부 차입 비용으로 590억 유로를 지출했는데, 이는 국방 예산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프랑스 감사원은 올해 차입 비용이 670억 유로, 2029년 1070억 유로로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현재 프랑스 재정의 가장 큰 지출 항목인 교육 지출보다 많은 금액이다.
파리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이프리의 국방 전문가인 엘리 테넨바움은 "프랑스가 군사 지출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독일과 폴란드 같은 이웃 국가들에게 추월당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핵탄두와 잠수함, 전투기, 항공모함, 그리고 약 2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내 최대 군사 강국 중 하나로 꼽힌다. 또 예비군을 더 늘리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핵 전력은 전체 군 장비 예산의 약 13%를 차지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플레이션과 무기·장비 가격 상승,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으로 돈을 쓰더라도 생각만큼 전투력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계획된 2030년까지의 증액이 서류상으로는 큰 폭으로 보이지만, 전투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무기 가격 상승으로 프랑스의 무기 보유고는 더 적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예를 들어 라팔 전투기의 경우 2021년 254대에서 2035년 225대로 줄고, 전차도 같은 기간 222대에서 200대로 줄어들 것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