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초장기 국채를 흔드는 손..."日생보사 자금이탈 충격에 대비해야"

[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미국과 일본의 초장기 국채 금리가 연일 발작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0년짜리 국채 금리가 하루 10bp 넘게 치솟는 게 예사가 됐다.
서로를 쳐다보며 화들짝 놀란 가슴들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채권시장 큰손으로 통하는 일본계 생보사들의 행보는 시장의 스트레스를 더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들의 포트폴리오 전략 변화가 일본 초장기물에 이어 미국 국채시장 전반에 연쇄 충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재차 고개를 들었다.
1. 美日 초장기 국채를 흔드는 손
최근 두 나라 국채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장기물 국채 금리의 앙등(초장기 국채가격 급락)은 비슷한 배경을 공유한다.
수요 측면에서는 민간의 국채 매입 의욕이 중앙은행들의 빈자리를 메울 만큼 충만하지 않다. 이는 일본 재무성과 미국 재무부의 국채 입찰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응찰배율은 하락하고 꼬리(평균 낙찰가와 최저 낙찰가의 차이)는 벌어지고 있다.
당장에는 일본 시장에서 BOJ의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진다. 중앙은행의 부재 혹은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야기한 관세 충격과 물가 우려에 의해 수시로 증폭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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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국채 시장내 민간 수요, 특히 초장기물에 대한 수요가 미약한 것은 공급 측면의 우려와 불가분의 관계다. 가격을 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 곡선이다. 재정 남발이 불러올 국채 공급 확대 위험은 수요·공급 곡선의 교차점(가격)이 아래로 더 이동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비해 시장 참여자들은 더 많은 보상(기간 프리미엄: Term premium)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데,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기간이 더 긴 초장기물일수록(더 오랜 세월 돈이 묶일수록)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크고 아름다운' 감세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가에서 나도는 소비세 인하설(감세), 마침 채권시장내 자경단을 일깨우기 좋았던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등의 재료가 버무러져 이 흐름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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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과 작별 후(금본위제 폐기 후) 종이화폐(법정화폐)를 뒷받침하는 것은 재정의 신뢰, 국채에 대한 신뢰다. 재정의 남발은 더 흔해진 종이화폐로 국채 원리금을 상환받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화폐오염에 대한 우려는 자산시장내 오랜 공식을 뒤틀어 놓는가 하면 대안 화폐들(비트코인과 금)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자양분이 됐는데, 이는 달러가 종이화폐들 사이에서 몹시 강했던 시절에도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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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약한 달러를 추구한다는 시장내 추측, 혹은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그러한 시도는 달러 자산 전반에 대한 투매(Sell USA)를 다시 부추길 폭발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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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 30년물 국채 금리의 최근 1년간 추이 [사진=koyfin] |
2. 日 생보사들의 매수 파업
채권시장 내 큰손으로 통하는 일본계 생보사들은 예전 같으면 아주 매력적이었을 금리 레벨에서도 초장기 일본국채(JGB)매수를 꺼리고 있다.
글로벌 금리의 변동성이 증폭되고 있는 데다, BOJ의 국채매입(QE) 테이퍼링(국채매입 감액)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맞서는 방책으로 대형 생보사들은 JGB 비중 축소를 택했다.
지난달 29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일본의 주요 생보사들은 올 회계연도(2025년4월~2026년3월)에 JGB 보유 잔액을 총 1조3000억엔(91억달러) 줄이기로 했다. 최대 보험사인 니폰생명의 경우 9년만에 JGB 보유 잔액을 축소할 방침이다.
올해 새로 도입된 생보사 자본규제는 금리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산부채 듀레이션 갭을 줄이도록 요구하는데, 보험사들은 이미 2020 회계연도부터 여기에 대비해 장기와 초장기물 비중을 늘려왔다.
규제요건 충족을 위한 업계의 초장기 JGB 매수는 이미 마무리됐다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생보사들의 초장기 JGB 매수 사이클이 일단락되고 이제는 (국채 가격 급변동 = 금리 급변동에 대비한) 일정 규모의 비중 축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과 4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JGB를 2조엔 넘게 매수했지만 생보사들의 '매수 파업' 앞에서는 별 힘을 써지 못했다. 모간스탠리의 매튜 혼바흐 전략가는 "JGB 시장의 높아진 금리 매력과 약 달러 흐름으로 미국 국채에서 일본 국채로 눈을 돌리는 외국인은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일본 현지 생보사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에 충분할지는 물음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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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와 일본 엔 지폐 [사진=블룸버그] |
3. "엔 자금 이탈이 불러올 충격"
시장 일각에서는 "최근 일본 초장기물 국채(JGB)와 생보업계 포트폴리오에서 나타나고 있는 조류의 변화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국채시장에도 연쇄 충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자리한다.
소시에떼 제네럴(SG)의 채권 전략팀에 따르면 2조6000억달러의 자산을 굴리는 일본 생보사들은 지난 10년간 BOJ의 가공할 완화 정책과 디플레이션 압력 하에서 중단기물 JGB 매수를 꺼렸다. 제로(0)%대 혹은 마이너스 수익률의 장단기물로는 운영비용 충당도 버겁다보니 많은 돈들이 초장기물 JGB와 해외 국채로 옯겨갔다.
최근 이 흐름은 되돌려지고 있다. 소시에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생보사들은 초장기 JGB에 대해 순매도로 돌아섰고, 해외 채권시장에서도 자금을 거둬 들이거나 매수 규모를 눈에 띄게 축소하고 있다.
해외 국채 보유로 기대되는 실질 수익률이, 환헤지 비용 증가에 의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미국과 유럽 국채시장을 빠져나오는 움직임이 완연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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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장기물 국채를 매수하던 일본 생보사들이 올해 1분기 순매도자로 돌아섰다 [사진=로이터, 소시에떼 제네럴] |
소시에떼는 "초장기 JGB와 해외 국채를 적극 매수하던 일본계 생보사들의 움직임이 전환점에 도달함에 따라 이들이 해당 시장(수급)을 계속 지원할 가능성은 이제 낮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외 채권 시장에서 이들의 줄어드는 존재감은 "해외 (국채) 시장의 변동성 위험을 높이는 한편, 엔화에는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로이터의 마이크 돌란 칼럼니스트는 " 28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의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특정 투자자 집단(일본계 자금 혹은 일본 생보사)의 행동 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장이 더 근본적인 이유(트럼프발 재정적자 심화와 달러 신뢰 훼손)로 미국 자산 가격을 재조정하는 상황에서는 작은 매매 움직임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간은 "BOJ와 일본 재무성의 공조작업 (BOJ의 QE 테이퍼링 속도 조절 및 재무성의 초장기물 국채 발행 감액)이 등장해야 일본 국채시장 내 초장기 금리의 급등세가 진정되고 기관들의 매수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과 일본 모두 인플레이션 환경이 5년 전과는 판이해 중앙은행의 발빠른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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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채권 순매수 동향(12개월 누적치) [사진=로이터, 소시에떼 제네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