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에 바라본 중국, 이념 아닌 실용으로 접근해야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기자가 중국 베이징특파원이었던 2022년 8월 초 14대 주중 한국대사로 막 부임한 정재호 신임대사 기자 회견이 베이징 대사관에서 열렸다.
"교수 시절 서울의 한 포럼에서 '한나라 외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이고, 실리를 위해 미국과 중국 양쪽을 모두 잘 상대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미중 균형외교에 무게를 둔 이런 입장에 변함이 없나"
뉴스핌 기자의 이 질문에 당시 정재호 신임 대사는 "나는 균형외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선 과정 부터 혐중및 반중정서에 편승했던 당시 윤석열 신 정부는 균형외교에 선을 긋고 나서면서 대중 경협 기반을 뒤흔들었고, 대통령과 고교동창 관계인 정 신임 대사는 자신의 소신까지 번복하며 '중국 거리 두기'에 코드를 맞췄다.
정재호 전 대사는 기자 회견에 앞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중국 투자에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주의하라"는 경고성 멘트로 현지 교민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 대통령 특명을 받고 중국에 온 정 전 대사의 이 발언은 현지의 우리 투자기업들에게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정 전 대사는 임기내내 특파원과 교민사회, 대사관 내부에서 불협화음을 빚었다.
![]() |
정재호 전 대사가 베이징에 부임하기 두달 앞서 최상목 당시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유럽 방문길에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시대는 끝났다"는 자극적인 워딩으로 탈중국론을 설파했다. 최 전 수석이 유럽에서 북을 치니 정 전 주중 대사가 중국 현지에서 장구를 치며 호응을 한 격이다. 우리 경제로 볼때 최 전 수석과 정 전 대사 두사람의 발언은 국가 실익은 커녕 기업 불안과 시장 동요만 가중시켰다.
당시 유튜버와 일부 유력매체, 증시 분석가들은 정치권의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탈중국(중국 엑소더스)이 마치 커다란 시대적 트렌드인 것 처럼 '이제 중국시대는 끝났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 무렵 기자는 베이징의 모처에서 삼성전자 중국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고위 임원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국내에선 중국 삼성 캘럭시 조립 공장이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전하는 것을 놓고 삼성이 중국 사업을 접는다고 호도하며 말들이 많아요. 하지만 색안경을 쓰고 볼필요가 없어요 . 그저 중국내 원가가 높아져 저부가 조립 사업을 비용이 싼 곳으로 옮기고, 그 대신 핵심 기술 위주로 현지 사업을 재편해나가는 겁니다."
이 임원은 당시 국내 언론들이 다투어 보도했던 탈중국 기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뒤 "한중수교 30년 동안 삼성의 중국 투자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 이중 최근 5년간 투자 비중이 40이다"며 중국사업 포기나 탈중국 운운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 중국 사업이 중국 첨단 고기술 기업과의 협력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2025년 3월 중국을 방문, 샤오미와 비야디(BYD)등 중국 기술 기업들을 만나 핵심 부품 공급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 현지 삼성 직원은 이재용 회장이 다녀간 뒤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국 삼성은 상생을 위해 세계무대로 도약중인 중국 기술 기업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윤석열 정권 3년, 국익을 최우선시 해야할 우리의 중국 경제 외교는 이념과 정치적 편향에 매몰돼 수교 이래 최악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중국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했을 뿐 경협 동반자로 상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중 수교 이래 우리가 30여년 공들여 일궈온 경제 영토가 크게 훼손됐다.
윤석열 전 정권은 수출 무역과 관광 분야에서 중국이 우리의 가장 큰 교역국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실용외교의 기초인 안미경중(미국과 동맹을, 중국과 경협을 강화함)을 극렬 부정해왔다. 같은 보수정권인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는 관계 정의 조차 저버린 윤 전 정권의 대중국 외교는 한국 경제에 참사에 가까운 손실을 초래했다.
다시 돼새겨야 한다.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끈끈한 동맹 위에서 중국과 긴밀한 경협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석이다. 미국과 안보 공조를 철저히 하고, 경제 분야에서 거대한 시장을 가진 '첨단 기술'의 나라 중국과 협력하는 것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용 외교의 첩경이다.
국가 명운이 달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반중 프레임은 한국 선거판의 마술과 같아서 혐중 정서를 조장하고 나서면 표심이 맹목적으로 휘둘린다. 직전 대선과 총선, 최근 계엄 탄핵 정국에서도 활개를 쳤던 악의적인 가짜 혐중 뉴스와 반중 몰이 대중 선동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갈길이 먼 한국 경제에 있어 중국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이다.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