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동거·출산' 긍정적 인식 변화…법·제도는 뒤쳐져

[세종=뉴스핌] 이유나 기자 = #아들과 사는 30대 이샘나 씨는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은 비혼출산 여성이다. 이샘나 씨가 비혼출산을 결심한 이유는 35세가 지나면 가임력이 떨어지는데, 그전에 결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국내에선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을 수 없어 이샘나씨는 덴마크까지 2박 3일의 여정을 거쳐 수술을 받았다.
비혼 동거·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관련 법·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비혼 동거·출산을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 중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논의는 시작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유교적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비혼 동거와 비혼 출산은 '넘어야 할 장벽'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관련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현재 비혼동거·출산 가구가 겪는 차별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비혼 동거·출산 사회적 인식 변화…'긍정' 답변 급증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이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2014년 22.5%에서 2024년 37.2%로 10년 새 14.7%포인트(p) 증가했다. 혼인 외 출산 비율도 2019년 2.3%에서 2023년 4.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다만, 프랑스(65.2%, 2022년)나 스웨덴(57.8%, 2022년)과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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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 응답 비율 [자료=통계청] |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동거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4년 46.6%에서 2024년 67.4%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비혼 동거·출산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비혼 동거·출산에 대한 정책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개선 필요사항 등을 검토하기 위해 전문가 및 정책 수요자 간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간담회에서는 비혼 출산 지원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정부는 비혼 동거·출산 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청년들의 변화하고 있는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을 정부가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혼 출산 등 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해 법·제도적 개편사항을 면밀히 검토하고, 편견을 가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관계 부처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전문가 "출산 휴가 등 사회적 차별 없애야"
전문가는 비혼 동거 가구가 출산을 결심하게 하기 위해선 비혼 동거 관계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변수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동반자 제도가 필요하다"며 "동거관계에서도 기본적 권리나 삶의 안전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신호를 주는 정책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비혼 동거 관계에서 보호자·돌봄자를 인정한다든지,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 사업에서 혼인 조건을 삭제해 임신과 출산의 시기나 조건에서 자유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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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핌 DB] |
또 다른 전문가는 비혼동거 가구가 겪는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송효진 여성정책연구원 가족저출생연구본부장은 "배우자 출산휴가,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 주거 지원 등에 있어서 비혼동거커플이 혜택을 받긴 어렵다"며 "비혼 동거 관계를 증명할 방법도 없어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정책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 비혼 동거 현황 파악을 위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차별 요소를 발굴해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선 비혼 출산 여성도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혼 출산 여성인 이샘나 씨는 "국내에선 혼인 상태가 아니면 정자 기증을 받지 못해 덴마크까지 가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며 "이 과정에서 시간과 돈이 많이 소요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비혼 상태에서도 여성은 임신하는 주체"라며 "비혼 상태인 이유로 정자 기증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출산에 대한 선택의 여지를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