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유리천장] ③ 한국 여성 관리자 비율, OECD 꼴찌 수준…"문화 바뀌어야"

국가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도입된 지 30년이 흘렀다. 공직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특히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자리는 사라진다. 3월 8일 UN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공직 세계에서 여성의 위치를 살펴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되짚어 보려고 한다.
[세종=뉴스핌] 백승은 기자 = 글로벌 기준 한국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The 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29개국 중 28위로 꼴찌 수준이다.
한국의 여성 관리자 비중은 2021년 기준 16.3%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5위다. 일본 다음으로 가장 낮다. 여성 관리자 비중은 기업 임원과 정부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대학 총장, 초중고교 교장 등 관리직 취업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한국은 이 비중이 OECD 평균(33.7%)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비회원국인 브라질(38.7%), 인도네시아(32.4%), 남아프리카공화국(31.6%)보다도 낮다.
◆ 각국서 공공 여성 비중 확대 법안 '속속'…민간 기업에도 확대
유리천장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한 국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여성 임원 비율은 43.7%, 의원 비율은 46.7%로 절반에 가까웠다. 남녀 노동시장 참여율은 3.5포인트(p) 차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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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10여년간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무국 등을 설치하며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결과 여성 장관 등 고위직 비중이 크게 늘었다.
지난 1973년 스웨덴 정부의 장관 중 여성 비중은 11% 수준이었지만, 1985년 25%로 늘었다. 1998년 양성평등 관련 국가 사무국을 설치하는 등 정책을 확장하며 50%로 다시 훌쩍 뛰었다. 2018년에는 양성평등청을 신설한 후 2020년대 들어서도 45~50%를 유지하고 있다.
각국에서는 공직 사회 등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확대하는 법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리천장 지수 29개국 중 12위를 차지한 스페인은 작년 8월 '남녀 평등한 대표성에 관한 법'을 도입했다.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내 의사결정기구가 한 성별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다.
법안에 따르면 특정 성별, 특히 남성 비율이 60%를 초과하거나, 다른 성별의 비율이 40% 이하로 떨어져선 안 된다. 정부 부처와 입법 및 사법기관과 공영 방송국 등이 이 법에 저촉된다. 정치 분야에서도 선거 후보자 명부에서 성비 균형을 맞추는 게 목표다.
공직 사회뿐만 아니라 사기업에 대한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지난해에는 유럽 의회는 '2026년 6월 30일까지 유럽연합(EU)에서 운영하는 모든 상장 기업은 비상임 이사에 해당하는 직급의 40% 또는 기업 내 모든 이사 직급의 33%는 소수 성별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공식 채택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12년 처음 제시된 후 10년간 표류하다 작년 처음 통과됐다. 법안에 따르면 기업은 성별 대표성 현황에 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개 및 보고해야 한다. 지침을 어길 시 벌금이나 시정조치가 부과될 수 있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 2021년 독일에서는 이미 '민간 및 공공 부문 고위직 남녀동등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하며 관리직 여성 비율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법안은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남녀 임원직 비율이 동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독일 상장기업의 경영이사회 여성 비율 30% 달성을 목표로 한다. 만약 30% 여성 비율을 채우지 못할 경우, 남성 이사진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석으로 둬야 한다. 법 시행 후 독일 경영이사회 여성 비율은 2017년 25%에서 2020년 35.2%로 증가했다.
◆ "근본적으로는 문화 바뀌어야…적극적 정부 정책 뒷받침돼야"
한국은 1989년 공무원 성별제한모집을 철폐한 후 1995년부터 국가와 지방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를 차례로 도입했다. 2002년 국가직 5급 이상 및 지방 관리직 여성관리자 임용 확대 5개년을 발표한 후 꾸준히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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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보다 적극적인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연구센터 박사는 "한국 사회는 특히 여성에게 30세 이전에 취업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점 때문에 여성들은 조급함에 상대적으로 취업이 쉬운 비정규직 등에 뛰어들고, 고위직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단계를 밟는다"며 "공직사회는 물론이고, 민간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결국 뻔한 얘기지만, 이런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직장 내 성평등 조직 문화를 형성하지 않고, 공동육아 문화가 자리 잡지 않으면 육아휴직을 비롯한 어떤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럽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예를 들어 '중앙부처나 지방직 공무원 고위직의 40%는 반드시 소수 성별이어야 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부처 평가에 반영하겠다'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며 "국가가 주도적으로 여성 고위직을 이끌어 주는 정책을 펼쳐야 보다 빠르게 성평등 문화가 확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