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 "칩스법 축소, IRA 폐지"…韓 배터리·반도체 기업 촉각
<편집자주> 세계 경제에 격변을 예고한 '트럼프 2기' 신행정부가 "미국의 황금시대가 시작된다"는 구호 아래 본격 막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자국 이익만을 추구하는 공격적인 행보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공언한 한미 FTA 재협상과 보편 관세 도입, IRA 수정 등 핵심 정책들이 우리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세종=뉴스핌] 백승은 기자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첫날인 20일(현지시간) "전기차를 우대하는 '불공정 보조금' 폐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당선 전부터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대폭 축소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한국 반도체 및 배터리 기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는 등 대응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 바이든 정부서 확정된 삼성·SK 할당 보조금…규모 줄어들까 '촉각'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라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 여부가 주목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조금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 결정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지급하기 때문이다.
칩스법은 지난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내 기술 우위 및 공급망 구축을 위해 시행된 법으로,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지원금을 5년간 지원하는 내용이다. 미국 상무부가 칩스법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보조금 규모는 527억달러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건설로 45억4500달러를,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패키징 공장을 통해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보조금이 확정됐지만, 앞으로 지급 과정에서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칩스법에 대해 "단 10센트의 보조금을 줄 필요도 없다"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 IRA 45X·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시…韓 기업 줄타격
IRA 역시 위기를 맞았다. IRA가 전면 폐기되는 것은 어렵지만 중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 및 공급망을 배제하기 위해 몇몇 법안을 삭제하거나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
IRA는 재생에너지 투자 촉진을 위해 전기차와 같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관련 기업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법안이다. 혜택을 받기 위해선 전기차의 핵심 광물 50%를 미국이나 미국 FTA 체결국에서, 부품의 60% 이상을 북미(미국·멕시코·캐나다)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IRA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며 "신종 녹색 사기"라며 강하게 지적해 왔다. 다만 현재 IRA 혜택을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더 크게 누리고 있는 만큼 전면 폐지는 사실상 어렵다. 작년 8월 앤드류 가바리노 등 18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IRA 폐지 반대 성명을 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 중 변화 가능성이 있는 조항은 IRA의 '45X', 즉 첨단 제조 세액공제(AMPC)다. 45X는 미국 현지에 투자를 하는 기업에게 배터리 셀, 모듈 등을 환급해 주는 제도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이 이 제도로 수혜를 입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우려집단(FEOC) 요건을 적용해 AMPC에서 중국 기업 및 공급망을 배제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 기업도 FEOC에 편입돼 지원이 중단되거나 중국 공급망에 편입된 한국 기업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전기차 세액공제(25E, 30D, 45W)가 폐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자체 지급 중인 인센티브를 지속해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던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간 트럼프가 캠프에서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칩스법과 IRA 축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중국과 멕시코 등에 대한 조치와는 달리 칩스법과 IRA은 미국 내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있어 연방 차원에서 결정하기에는 어렵다. 기존에는 "왜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냐"며 비판했지만, 이미 법이 만들어져 시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 헝가리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조감도 [자료=삼성SDI] |
◆ 대응 나선 정부, 정작 반도체특별법은 '차일피일'
정부도 대응에 나섰지만 정작 종합 대책인 반도체특별법은 탄핵 정국에 밀려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앞으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매주 월요일 주재하고, 외교·산업부처 수장과 IRA를 포함해 통상 현안 관련 논의를 펼쳐 나갈 계획이다.
직접적으로 영향권인 이차전지와 배터리 분야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한국배터리산업협회와 배터리·배터리 소재 기업과 '이차전지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기업에 직접보조금을 주는 내용이 담긴 반도체특별법은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특별법은 정부가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근거가 마련됐다. 미국과 대만, 일본 등은 정부 차원에서 조 단위의 보조금을 지원하지만, 한국은 직접 보조금 대신 세액공제 혜택만 지원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정치적 불안정성에 차일피일 미뤄지는 중이다.
고준성 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미국 시장이 타 기업에 이용되지 않는 것'이 골자"라며 "그간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국제 규범의 합치성을 많이 신경썼는데,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적으로 다자주의가 줄어가고 각국도 핵심 산업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아울러 "다만 어느 정도로 정부가 지원할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국 기업은 인프라나 규제 완화 등에 대한 요구도 많아 한국 실정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