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 '줍줍' 기회를 엿보는 자금들..."덫에 걸린다" 경고도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새해 벽두부터 미국 국채 가격이 한바탕 급락(국채 금리 상승)세를 연출한 뒤 월가에서는 국채 매도 베팅을 줄이거나 저가 매수 기회를 엿보는 선수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많은 부정적 재료들이 국채 가격에 선반영된 것 같다는 인식과 함께 높아진 수익률(yield)이 제공하는 매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눈치다.
다만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숨가쁘게 전개될 정책들과 그에 따른 시장반응을 자신할 수 없어 아직 '공격적인 매수'를 외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계심은 채권시장 수급과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장기물과 초장기물 국채에서 여전하다. 기회를 엿보더라도 중기물(5~10년물 국채)이 안전해 보인다는 조언과 함께 간밤(1월15일) 미국의 누그러진 인플레이션 지표에 현혹됐다가는 덫(bull trap)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 "장기물 국채의 숏베팅 끝내고 차익실현"
그간 장기물 국채 가격의 약세(장기물 금리 상승)에 베팅해 온 것으로 유명한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의 마크 다우딩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가 국채 숏(국채 매도) 베팅을 멈췄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우딩 CIO는 지난주부터 장기물 국채에 대한 숏 베팅을 접었다고 밝혔다. 이는 예상보다 강력한 고용지표 발표 후, 미 국채 30년물 금리가 2023년 11월 이래 처음으로 5%를 뚫은 뒤다. 단기적으로 30년물 금리의 고점을 봤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아울러 30년물과 2년물의 금리차가 벌어질 때 돈을 버는 '커브 스티프너(curve steepener)' 거래 비중도 줄였다고 했다. 이는 30년물 가격이 2년물 가격보다 더 많이 하락할 것이라 보고 2년물 국채를 매수하고 30년물 국채를 매도하는 거래인데, 다우딩은 해당 수익률 곡선이 더 가팔라질 공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다우딩은 "국채 수익률은 현재로선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라며 "지금 미국 금리에서 딱 맞아 떨어지는(명료한) 거래가 없다"고 짚었다.
RBC 블루베이에서 1300억 달러 규모의 채권 펀드를 운용하는 다우딩은 지난해 9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선 이후로 미국 국채에 대한 약세(국채 금리 상승) 베팅을 지속했다. 반대로 회사채 비중은 늘렸다.
미국의 강한 경제와 영속적인 재정적자가 30년물 국채 금리를 5%로 밀어올릴 것이라는 그의 판다은 옳았다. 유로와 파운드에 대한 달러 강세 베팅도 적중했다. 소위 '트럼프 트레이드'가 외환시장을 지배하면서 달러는 지난해 9월말부터 뜀박질을 했다.
그러나 장기물과 초장기물을 중심으로 국채 금리가 한바탕 치솟은 뒤 이제 그는 국채 매도 포지션을 줄이고 포트폴리오내 회사채 비중도 덜어내고 있다. 다만 달러에 대한 매수(long) 포지션은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2. "중기물에서 기회를 엿보라"
채권 명가 핌코는 중기물(5~10년물)에서 기회를 엿보라고 조언했다. 금리 리스크를 너무 많이 감수하지 않고도 충분히 매력적인 수익률(yield)을 취할 수 있는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반(反)이민정책과 관세공격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한층 뜀박질을 하면 장기물과 초장기물 국채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경우 중기 영역의 국채도 유탄을 피할 수 없지만 상대적으로 듀레이션이 짧아 충격은 덜하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공격이 우려했던 수준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면 중기물 국채 가격의 반등폭은 장기와 초장기물에 못할 수 있지만, 지금의 불확실 장세에서는 이러한 위험과 기회의 적절한 중간 지대를 택하는 게 좋다는 것이 핌코의 생각이다.
핌코는 "고조된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연준 금리인하 사이클이 더 오랜 기간 중단될 수도 있지만 실질 중립금리에 대한 우리의 기본 전망(핌코는 실질 중립금리가 장기적으로 0~1%라고 본다)에 근거할 때 중기물 국채의 수익률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핌코의 앤드루 볼즈 글로벌 채권 CIO와 티파니 와일딩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4일자 보고서에서 "우리는 미국 국채의 수익률곡선에서 30년 영역에 대해서는 비중 축소를, 5~10년 만기 구간에 대해서는 비중 확대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3. 장기물과 초장기물에 드리워진 불확실성
현지시간 15일 공개된 미국의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RBC 블루베이 자산운용과 핌코의 전략이 현재까지 맞아떨어졌음을 보여준다. 예상을 밑돈 근원 CPI(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CPI) 상승률에 간밤 국채 금리는 전 영역에 걸쳐 크게 하락했다(국채 가격 급등).
다만 핌코의 조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장기물과 초장기 국채에 대한 시장의 경계심은 사라지지 않다. 간밤 미국 10년물과 30년물 국채 금리의 하락을 이끈 것도 '공격적이고 본격적인' 국채 매수세로의 전환이라기보다 그간 한방향으로 몰렸던 국채 숏베팅의 되감기에 가깝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재료가 가세하기도 전에 미국의 국채시장 수급은 많이 불안하다. 그 근원은 계속 부풀고 있는 재정적자다. 구멍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 물량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 하에서도 이 동학은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실제 미국 재무부가 최근 발표한 2025회계연도 1분기(2024년 10~12월) 재정적자는 7110억 달러(약 1032조 165억 원)에 달해 1년전 같은 기간의 5100억 달러에서 39% 급증했다.이는 종전 최고치 기록인 2021 회계연도 1분기(2020년 10월~12월)의 5729억 달러 적자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