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미끼를 물었을 뿐이고..."네타냐후의 체스판에 강제소환"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란과의 전쟁 국면에서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치밀한 전략에 사실상 조종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17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란의 핵시설 공격 여부를 두고 미국 내에서 개입 회의론이 여전하지만, 수년간 이란 정권 붕괴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군사작전을 단계적으로 준비해 온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 트럼프를 자신이 설계한 체스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표면적으로는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공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란 정세를 주도하는 쪽은 '체스 그랜드마스터'에 비유되는 네타냐후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초반, 전쟁 종식과 이란 핵 합의 복원을 주요 외교 공약으로 내세웠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만에 끝내고, 이란과 핵 협상을 타결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현재 두 공약 모두 답보 상태다.
오히려 네타냐후와 함께 이란과의 대결 국면에 깊숙이 발을 들인 상황이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아직 미군에 이스라엘과의 공동 공세를 명령하지는 않았지만, 벙커버스터 폭탄을 이용해 이란 핵시설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네타냐후의 설득에 곧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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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사진=로이터 뉴스핌] |
◆ 중동 '체스 마스터' 네타냐후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을 상대로 한 '길고 거대한 밑 그림(장기 전략)'을 수년간 준비해왔다. 필요할 때는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뿐 아니라 체제 붕괴까지 염두에 두고서 가자지구와,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단계적으로 전략을 구사, 이란과 본 무대를 준비해왔다는 게 폴리티코의 설명이다.
매체는 올해 초 트럼프가 가자지구의 일시적 휴전을 요구했을 때도 네타냐후는 이를 수용하는 척하면서도 여전히 이란을 겨냥한 전략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전직 보좌관이자 정치 전략가인 나다브 슈트라우클러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은 이란 본토와의 대결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며, "이란의 대리 조직들을 먼저 무력화시켜 핵심 목표에 집중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란을 상대로 '중동판 순망치한'을 구현하려한 그의 전략은 지난 13일 대(對)이란 공습 이후 현재까지 전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먹혀들고 있다.
슈트라우클러는 네타냐후가 늘 두 가지 이상의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첫째는 전면전이 아닌 방식으로 이란 체제의 몰락을 유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브라함 협정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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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네타냐후는 10월 7일 이후 단계적으로 작전을 전개해왔다. 초반에는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이 레바논 선제공격을 주장했지만, 네타냐후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가자지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고수했다. 이후 작전은 레바논으로 확장됐고,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붕괴라는 예상치 못한 호재도 따랐다.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의 '참수 전략'도 큰 성과를 거두며 네타냐후의 전략에 힘을 실어줬다. 이 전략은 이란 정권의 무능함을 드러냈고, 네타냐후는 초기에는 핵시설 파괴에 집중하던 입장에서 최근에는 정권 교체 필요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는 급기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는 것이 이번 충돌을 끝낼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폴리티코는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이란을 속여 방심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측이 '협상의 달인' 트럼프가 네타냐후를 견제할 것이라 믿었지만, 정작 트럼프가 이란 문제에서 '체스 마스터' 네타냐후에게 말려든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