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한국 대사 면담 내용 공개하고 한국의 대북정책 비판한 의도는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러시아가 이도훈 주러시아 한국 대사와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의 면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한국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면담 내용을 자세히 공개하고 외교 상대국의 대외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는 22일(현지 시각) 성명을 통해 루덴코 차관과 이 대사의 면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러시아 측은 북한을 향한 압박 정책과 핵을 포함한 한·미·일의 공동 군사훈련이 평화적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늦추고 있다는 점을 한국에 강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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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 [사진=러시아 외무부 홈페이지] |
이번 면담은 이 대사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사는 그동안 루덴코 차관을 포함한 러시아 외교 당국자들과 부정기적으로 면담을 해왔다. 러시아는 이 같은 면담을 간단한 보도자료 형식으로 공개해왔지만, 이번에는 면담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며 한국을 비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 루덴코 차관이 이 대사와 만나 '한반도의 긴장 고조를 촉발하는 대결적인 정책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북한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고 군사동맹을 부활시킨 것에 대해 한국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당시에는 한·러 관계가 긴장 상태였으나 이번에는 양국이 조심스럽게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한·러는 전날 모스크바에서 7년 만에 양국 간 영사협의회를 재개하고 루덴코 차관이 윤주석 외교부 영사안전국장을 만나기도 했다.
한·러 관계와 북한 문제 등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러시아의 성명은 한국이 아닌 북한이 오디언스(청자)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러가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인 것을 북한이 경계할 것으로 의식해 의도적으로 한국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정책변화를 촉구하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한국 대선이 임박한 것을 계기로 차기 정부에게 한·러 관계와 남북 관계에서 윤석열 정부와 다른 접근법을 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