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공격 '규탄'했던 정부, 미국의 공격에는 "핵비확산 관점" 강조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정부는 핵 비확산 관점에서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란 내 핵 시설 공격 관련 사태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21일(현지 시각) 이란의 핵심 핵시설 3곳을 공격한 것에 대해 외교부가 내놓은 입장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이란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내용이다. 외교부는 "역내 긴장이 조속히 완화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지속 동참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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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1호 행정명령 비상경제점검TF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5.06.04 |
그러나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기습적으로 이란 핵 시설을 공격해 양측 간 충돌이 시작됐을 때 정부가 내놓은 입장은 달랐다. 당시 외교부는 "정부는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 등으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든 행동을 규탄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 공격했을 때는 '우려와 규탄'을 나타냈던 정부가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격에 대해서는 핵확산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상당히 결이 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입장을 낸 것은 북한 핵 문제의 당사국으로서 국제비확산체제 유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무력을 통한 문제 해결은 지지할 수 없는 복잡한 배경 때문이다.
여기에 북핵 문제에 직접 개입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더해져 있다. 미국과의 관계 설정은 '실용 외교'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게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미국의 이란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과 북한 핵은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둘 다 비확산체제를 흔드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같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나라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이란의 핵개발을 묵인하거나 지지할 수 없다. 정부가 미국의 공격에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의 해결'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핵 시설 공격이 중동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을 동원하고 한반도가 핵 전쟁터가 되는 것을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빌 클린턴 미 행정부가 북한의 영변 핵시설 공격을 검토하고 있을 때도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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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란 테헤란의 샤란 석유 저장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오는 24~25일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던 정부가 이날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불참을 결정한 것도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란 문제가 가장 핵심적인 논의 주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번 사안에 대해 무 자르듯 분명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정부로서는 부담을 피해가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향후 외교적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이란 영토를 직접 공습한 것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이라며 "국제비확산체제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군사력 동원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라는 내용을 포함시켜 일관성을 유지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