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1조원대 연금 사기…룰라 대통령 재선가도에 '빨간불'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브라질에서 약 1조 5500억 원 규모의 연금 사기 사건이 터지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이번 스캔들은 장관 사퇴로까지 이어지며 여당 내 결속력 약화는 물론, 룰라 정권에 대한 여론의 신뢰도 흔들리고 있단 진단이다.
연방 경찰과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기 사건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약 600만 명의 퇴직자들에 대한 연금 지급에서 자금이 부정하게 빠져나갔다. 사기 총액은 63억 헤알(1조 5500억 원)에 달한다.
브라질 평균 연금 수급자는 매달 약 1882헤알(약 46만 원)을 받는다. 지난달 경찰은 피의자 6명을 검거했는데, 이들은 공무원들과 결탁해 퇴직자를 허위 조합이나 단체에 본인 동의 없이 가입시켜 의료비 할인이나 장례 지원 같은 명목상의 서비스 제공을 빌미로 매달 연금에서 소액을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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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회견 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사기 사건 발생 당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행정부 때다. 비록 룰라 정권이 직접 연루된 사건은 아니어도 경찰 수사 대상이 된 11개 단체 중 하나는 룰라 대통령의 친형이 경영진으로 속한 연금 수급자 조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야권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친형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극우 성향의 니콜라스 페레이라 하원의원이 "연금 수급자들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무려 환자이자 고령인 국민에게서 수십억 헤알이 사라진 사건"이라고 현 정부를 질타한 인스타그램 영상은 1억30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이 연금 관리에 책임이 있는 카를루스 루피 사회보장부 장관을 일주일 넘게 감싼 일도 사회적 공분을 샀다.
사회보장부가 이미 2023년에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도 본격적인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였어서 정부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정치분석기관 아틀라스인텔 조사에선 응답자의 절반이 정부 대응이 '너무 늦었고, 잘못된 방식'이었다고 응답했다.
룰라 대통령이 루피 장관을 감싼 것은 민주노동당(PDT)을 연정에 붙잡아두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었단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결국 루피 장관은 사임했고 PDT는 연정에서 이탈했다.
브라질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의 카를로스 페레이라 교수는 "PDT의 탈당은 정부의 정치적 약화 징후이며, 이미 연립 내 이탈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PDT의 연정 이탈로 룰라 정부의 정치적 기반 약화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룰라 정부 지지율도 하락세다.
CNN 브라질과 여론조사기관 이페스페(Ipespe)의 지난달 여론조사에 따르면 룰라 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는 53%에 달했다. 경제성장과 실업률 개선에도 불구하고 고물가와 생활고로 민심 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틀라스인텔의 안드레이 로만 대표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지지율 문제를 넘어, 룰라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브라질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전액 보상 의사를 밝히며, 책임은 전 정권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룰라 대통령의 노동자당(PT)은 과거 대규모 뇌물 스캔들 전력이 있어 유권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로만 대표는 "2026년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부패는 노동자당의 최대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