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연방법원 힘겨루기.. `출생시민권`이 무엇이길래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서명한, 이른바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연방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 연방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애리조나·일리노이·오리건주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행정명령의 효력을 14일간 정지할 것을 지시했다.
코에너 판사의 이번 결정은 행정명령 효력을 당장 막아달라고 한 원고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내린 효력 정지 조치다. 추가로 행정명령 효력을 막을지 여부는 오는 2월 5일 심리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출생 시민권이란 무엇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출생 시민권 발급을 제한한다는 것일까.
미국 여권. [사진=블룸버그] |
◆ "노골적으로 위헌"...법조계, 출생시민권 존재 '한목소리'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그리고 사법권에 속하는 사람 모두가 미합중국 시민이며 사는 주의 시민이다"란 내용이 담겼다.
1857년 노예로 미국에 들어온 아프리카계와 그 후손은 미국 헌법 아래 보호되지 않으며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연방 대법원의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 사건 판결로 미국 내 노예제 폐지 운동이 활발해졌고 결국 남북 전쟁으로 이어진 계기가 됐다.
남북전쟁 후 연방의회는 3개의 헌법 수정 조항(제13조·제14조·제15조)을 통과했고 각주에서 비준받게 됐다. 수정헌법 제13조가 공식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한다는 내용이라면, 수정헌법 제14조는 아프리카계 노예의 후손도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 시민이 돼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미국 법조계는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의 내용이 명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의 시민권 유무와 관계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미국 시민이라는 것. 이에 미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된다고 해서 흔히들 '출생시민권'이라고 부른다.
역대 판결 사례를 봐도 이 조항을 '출생시민권'이 아니게 해석한 경우가 거의 전무하다. 때문에 코에너 판사는 이날 행정명령 효력 정지 명령을 내리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노골적으로 위헌적"(blatantly unconstitutional)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40년 동안 판사직을 지내오면서 이처럼 명확한 위헌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 트럼프 행정명령의 근거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원정출산'도 자녀의 출생시민권 취득을 위한 것이다. 불법이민 강경 대응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은 출생시민권이 "불법 이민을 부르는 강력한 자석"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앵커 베이비'(anchor baby·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얻은 자녀를 통해 미국에 정착하려는 행위를 비꼬는 단어로, 자녀가 부모의 닻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막겠다고 공언해 왔다.
2023년 11월 5일(현지시간) 촬영된 멕시코 남동부 타파출라에서 미국 남부 국경으로 향하는 긴 이민자 행렬.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출생시민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불법 체류자 자녀의 자동 시민권 발급을 제한한다.
트럼프 측은 수정헌법 제14조 제1항에 "사법권에 속하는"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은 미국 시민이거나 합법 영주권자의 자녀에게 한정해 출생시민권이 보장된다는 의미라고 좁혀 해석한다. 즉 불법 체류자들이나 원정출산자 자녀들까지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시민권을 주는 관행은 헌법 조항을 잘못 확대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오는 2월 19일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적용된다. 그는 법무부와 관련 연방 기관들에 출생시민권 발급 제한 지침 마련을 지시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연방법원이 오는 2월 5일 심리에서 추가 행정명령 효력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미국 전역의 22개 주와 전국의 여러 이민자 권리 단체가 낸 위헌 소송은 총 5건이다.
법학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출생시민권을 제한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법원의 위헌 결정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회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야 하는데 이 기준은 더 까다롭다. 연방 상ㆍ하원의 3분의 2가 헌법수정을 발의하거나, 3분의 2 이상의 주 의회의 요청이 있을 때 발의된다. 헌법 개정안이 통과 돼도 4분의 3 이상의 각 주(州) 의회의 비준이 있어야 효력이 발생한다.